Writing/삶에 대한 생각

AI 시대, MVP 에 대한 생각

행복한 시지프 2025. 8. 8. 18:35

 

제가 개발을 처음 시작하고, 1달여 지났을 때 만든 사이트가 있습니다. 발표시간 계산기 라는 사이트입니다. 대본을 넣으면, 발표시간을 예측해주는 간단한 기능을 가졌습니다. 약 4년간 꾸준히 이용되며, DAU 1,000 가량을 기록하고 있어요. 저의 생애 첫 프로젝트 치고는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네요.

 

한 1년간 관심을 끄고 살다가, 오랜만에 구글에 발표시간 계산기를 검색해보니, 십수개의 카피캣이 생겼더군요. 당연히 유일무이한 기능은 아닌지라 그러려니 하지만, 어떤 사이트는 co.kr 도메인을 kr 로만 바꿔서 퍼블리시 하고, “도움이 되셨다면 간단한 사용후기를 남겨주시겠어요?” 라고 하는 피드백 요청 멘트까지 동일하더군요. 자동으로 카피 하는 bot 이 있는걸까 하는 생각까지 드네요.

 

저의 사이트가 그만큼 따라하기 쉽고, 기능이 많지 않은 사이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카피캣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작은 DAU 의 사이트에도 십수개의 카피캣이 있다면, 돈이 되는 기능을 가진 서비스들은 얼마나 더 심할까 싶네요. 이 현상을 보며 MVP 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 공유드리려고 해요.

 

1. 최소 기능을 만드는 것은 더 쉬워졌다.

이제는 생성형 AI 를 활용하면 단번의 프롬프트로도 MVP 수준의 제품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래도 하루 이틀은 개발해야 MVP 를 낼 수 있었지만 말이죠. 그말인 즉, 카피도 단번에 가능하다는거에요.

 

2. 그렇지만 초기선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누구나 쉽게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제 MVP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글들을 보았어요. 저는 여전히 MVP 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초기선점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초기 바이럴은 후발주자가 들어오더라도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먼저 터진 사이트가 SEO 상단에 위치할 확률이 높습니다. 아무리 많은 카피캣이 생겨도 제 사이트가 이미 바이럴이 되어있고, SEO 상단에 있으니, 후발주자가 큰 격차를 만들지 않는 이상 뒤집기 어렵습니다.

 

3. 아이디어로 만든 성공의 지속 기간이 짧아졌다.

아이디어를 실현하여 초기에 선점한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따라 만들고 기능을 추가하면 판도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 와 함께 이 사이클이 짧아졌죠. 그러니, 아이디어를 처음 실현한 후에도, 꾸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후발주자가 따라오지 못하도록요.

 

4. 속도를 추구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이제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발주자가 따라오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또는 본인이 후발주자이더라도, 빠르게 쫓아가서 따라만들면 됩니다. 속도에 자신이 있다면요. 토스가 10년간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거물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토스는 속도 면에서 다른 IT 기업보다 몇배 빠릅니다. 그래서 시장을 자주 선도하기도 하며, 뒤쳐진 사업은 누구보다 빠르게 쫓아갑니다. 이제는 조직 문화가 더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5. MVP 는 무의미하지 않다.

MVP 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MVP 를 단지 시장 선점을 위한 방법론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MVP 는 린 스타트업 철학을 이행하는, 효율적이고 유연한 제품 개발 프로세스입니다. 핵심 기능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문화 그 자체입니다. MVP 를 만들기 쉬워졌으니, 더 크게 개발하고 배포하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핵심이 아닌 기능은, MVP 를 빠르게 배포한 후에 바로 다음날에 데이터를 보고 디벨롭 하여 재배포하면 되는 일이지요. 저는 바이브 코딩이 성행하기 전부터 이미 토스에서 그렇게 일해왔습니다. 이젠 아마 하루가 아니라,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을지도 모르죠.

 

쓰다보니 사실 옛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 같습니다. 정도가 심해진 것 뿐이지요. MVP 의 정신과 철학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