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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의 생각, 나의 삶

도전해보지 않은 자들에게 합리란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20210326

 

도전해보지 않은 자들에게 "합리"란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합리(合理 : 이치에 맞다)라는 말을 언제 사용하는가.

어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합리를 논하는가?

이와 같은 말에서 정답을 알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서 합리적이었어."

"그때는 그렇게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었어."

합리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합리라는 단어를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단어의 올바른 사용방법"보다, "인간의 의식 작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인간의 사고 과정에 대하여.

언젠가 유튜브에서 도전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본 적이 있다.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하고, 비행기 조종사가 된 용감한 사나이였는데, 사실 강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혀 감명 깊지 않았다.

내용 이외에 하나 느꼈던 점은, 그가 도전에 대해 굉장히 쉽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이 보면 화가 나버릴 정도로 도전에 대해 쉽게 말해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주목했던 점은 "어떻게 그가 도전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가 도전을 쉽게 여기게 되었는가"이다.

왜 그는 도전을 쉽게 말할 수 있었던가?

왜 나는 도전이 그리도 망설여졌는가?

이 둘간의 대비.

그러므로, 그가 어떻게 도전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단언컨대, 도전은 도전의 축적에 의해 이루어진다.

도전하면 할수록, 도전은 쉬워지고,

도전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도전은 어려워진다.

중요한 것은 분야를 막론한다는 것이다.

번지점프를 한 경험과 세계여행을 하는 경험.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번지점프 도전은 세계여행 도전을 쉽게 만들어준다.

반장선거에 출마해본 경험은 번지점프 도전을 쉽게 만들어준다.

다시 말하면, 도전이 축적된 자들에게 합리란 도전하는 것이고,

도전이 축적되지 않은 자들에게 합리란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깨닫는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없기에, 자신을 먼저 납득시키고자 하는 합리적 기제를 발휘한다.

이 기제가 절대적인 논리가 아님을 깨닫는다면, 합리라고 하는 자신만의 판단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합리적인 사고에 의한 도전 또는 망설임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둘 수 있다.

자신의 사고 과정이 지극히 만족스러운 이는 나의 글을 사려깊이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

나처럼 도전하고 싶지만, 망설이게 되는 이가 유심히 읽어준다면 일말의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