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외감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바로 삶의 그릇이 큰 사람이다. 창업하고, 해외로 유학을 가고, 책을 출판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 이후로 그릇이 크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몇 개월간 생각해 왔다. 이제야 실마리가 잡혔다.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이다. 실행력과 그릿(Grit)이다. 풀어쓰자면, 일단 행동하고 그것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그릇이 큰 사람이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오해한 바를 밝혀보겠다.
먼저 실행력에 대한 오해를 해체해 보자. 나는 어떤 일이든 사전에 계획하는 것을 좋아했다. 즉흥적인 상황에 놓이는 것보다 준비된 것을 할 때, 내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그것을 핑계로 삼아, 실행보다는 준비만을 해왔던 것 같다. 준비된 상황에 대한 갈망은 곧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게 내가 실행을 늦추거나, 아예 못 하도록 막았다. 사전에 모든 계획이 서 있을 수는 없다. 행동을 한 단계 해나감에 따라, 정보는 늘어나고, 판단이 바뀔 수 있다. 즉,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우월한 전략은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옳아 보이는 선택을 해내고, 그 이후는 정보가 더 많을 미래의 나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점을 깨닫고, 나는 이제 실행을 찬양하련다. 계획보다는 지금 눈앞에 있는 가장 중요한 1가지 행동에 집중할 것이다.
다음으로 그릿에 대한 오해를 해체해 보자. 그릿은 “끈기와 열정으로 끝까지 해내는 힘”을 말한다. 책 그릿에 나오는 내용이 있다. “그릿의 전형인 사람들도 목표들을 포기한다.”, “푹 빠질 수 있는 종목을 찾을 때까지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것 같아요.” 이 구절은, 그릿이 높은 사람도 무작정 하나를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상위의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하위 목표가 생기면 그것으로 이행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이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크고 추상적인 목표만을 추구하고, 하위 목표는 자주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확증편향을 더 강화하게 된 셈이다.
처음에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가, 더 이상 최선의 목표가 아니게 되면, 나는 쉽게 그만두고 다른 것을 시작했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우직하게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막론하고도, 보컬을 배웠다가, 힙합을 배웠다가, 과학을 공부했다가, AI를 공부했다가, 마구 실행하고 목표가 변함에 따라 마구 옮겨 다녔다. 그때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돌아보면 나에게 남은 것이 많이 없었다. 시도해 봤다는 의미뿐, 나는 그쪽의 준전문가도 되지 못했다. 어떤 깊이 있는 의미도 남기지 않았다. 또한 하나를 끝까지 집중할 수 있는 힘, 그 모멘텀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의 태스크를 할 때도 쉽게 그만둬버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실행력과 그릿에 대한 오해가 점점 나의 그릇을 좁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고민하고 신중하게 실행하고도, 쉽사리 그만둬버린 일이 잦았다. 이상적으로 가야 할 방향은 쉽게 실행하고, 오랫동안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는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고, 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본성이 그러한지라, 단번에 행동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결정의 순간마다 한 줌씩 더 신경 써서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성공 경험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쌓이면, 자연스레 의사결정 체계가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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