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격언이 있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무엇을 /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진다. 즉, 지식이 세상을 보는 창이다. 어떤 이는 과학으로, 어떤 이는 역사로, 어떤 이는 철학으로, 어떤 이는 사회학으로, 어떤 이는 경제학으로, 어떤 이는 경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예시를 들어보자. 산업 혁명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철학으로는 데카르트의 합리론, 법학으로는 특허법, 역사로는 인클로저 운동, 등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각 분야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다른 배울 점을 제공한다.
우리의 일상도 같다.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많은 도구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중에서도 자기방어, 열등감 등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그르칠 수 있다.
특히, 왜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가 를 파악하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메타인지라고 한다. 메타인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는 굉장히 심오하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더 나아가서,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게는 진화론, 작게는 뇌과학과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으로 끝인가? 타인은 나를 보는 거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역사와 철학, 소설 등을 통해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다.
나는 철학만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철학자의 견해를 공부하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또는 결론을 내리고도, 마음속으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세상을 보는 창이 편협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는 과정이다. 이것을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유전자에 대한 이해 없이, 심리학과 뇌과학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답을 내놓은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초라한가, 나는 얼마나 자만했는가, 세상을 다 안다는 듯이, 그것들이 부끄러웠다.
지식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현재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 전부가 아니다. 반대편 풍경은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질 것이다. 내가 가진 편협한 지식으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정답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다양한 창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깨달음조차 언젠가 더 강화되거나, 무너지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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