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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의 생각, 나의 삶

격언의 부조리함. (feat. 밀란 쿤데라)

20210228

 

“수적천석(水滴穿石) :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와 “계란으로 바위치기”

“인생은 타이밍이다.”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해봐야 안다.”와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가?”

 

언젠가 격언이란 우습다고 생각이 들었다. 격언을 자주 뱉는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격언은 그들끼리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생각을 시작했는지 돌아보면, 나는 삶의 법칙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A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A`으로 행동해야지”의 A`을 정해두고 싶었다. 삶은 불안하고, 여러 변수들 사이에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너무나 많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했다가도,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사람을 보았다. 돌다리를 두들기다가 여러 기회를 놓쳐 보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자주 던지는데, 사실 이것은 인생을 한 손에 잡고 싶은 욕망에 불과하다. 절대로 “인생은 타이밍이다.”와 같은 격언을 통해, 삶을 손안에 넣을 수 없다. 그것은 영화 <Her>에서 테오도르가 AI인 사만다를 만나고자 하는 욕구이며, 삶을 객체로 대해고자 하는 욕구이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등의 착각. 현재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을 이해하지만, 실제로 그 일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절대 원하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3일을 버티지 못 하고, 다시 뭐라도 시켜달라고 소리칠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 내 의지대로 잡히길 바란다. 그렇지만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해낼 수 있다면, 그 인생을 정말 인생이라 부를만 할까.

밀란 쿤데라는 그런 면에서 삶에 대한 통찰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가벼움과 무거움 중 하나로 정의하지 않는다. 키치를 던져버리고, 비-키치만을 주워담으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고 난 후 시원하지는 않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었을 때만큼의 상승감은 없다. 이제 삶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삶의 모습을 직시해볼 수 있었다. 마치 <Her>에서 테오도르가 결국 사만다가 아닌 캐서린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